Translated by
Jennifer Walcott Miss August2001My Story
Page 1
Is the glass of water half full or half empty? Half full, of course. My mom always taught us to look at the bright side of life. Anything is possible. And here I am Miss August 2001, Centerfold for one of the most innovative and renowned magazines of our time.
I grew up in Youngstown, Ohio, second child of four (I have an older sister and two younger brothers). A lot of people thought my sister and I were twins. I had to do everything she did and have everything she had. We even dressed alike. When I was three years old I put on a pair of her ballet slippers and I was hooked. For the next ten years I studied ballet, listened to classical music, studied the violin, and pictured myself as the lead ballerina in Swan Lake. I also fancied myself a poet. One of my poems took first place in my school poetry contest. That same poem then placed citywide and was submitted statewide for a Reader's
Digest young poets contest, where it took first place again.
Growing up, our house was full of kids and animals. (I was responsible for bringing most of the animals home.) At one time we had two birds, two cats, eight dogs, a rabbit, countless gerbils and an aquarium full of fish. I always wanted to rescue a stray. Even today, my mom and I co-own five boxers for our breeding venture (they live with her, of course). I even thought about becoming a veterinarian. I have done volunteer work at several vet clinics.
In grade school I was a "brownie" and our Girl Scout troop volunteered every Christmas to brighten up the holidays at nursing homes for the elderly. We would sing Christmas carols and bring cookies. In high school I was a candy striper at local hospitals for two years. These experiences were valuable; just a little kindness to a child, dog, cat or older person is so greatly appreciated.
Page 2
I have always been athletic and was a cheerleader in junior high. I liked cheering at basketball games best. I graduated from Lowellville High School in
1995. In high school I entered several Miss Teen pageants. When I was ten years old I modeled at our local mall for a back-to-school fashion show. Runway modeling became a dream of mine, but I lacked the height. I had been out of school for a year when my boyfriend Bobby finished college and moved to Los Angeles. I came out there to visit him and realized that Los Angeles is the place where dreams can come true. I went back home to Ohio, packed up my things and drove cross-country back to Los Angeles. That decision put me on the road to making my dreams come true.
At first it was rough. I worked as a cocktail waitress and in small boutiques. Bobby worked on movie and commercial sets, so I took some courses in makeup artistry and enrolled in Santa Monica College with the thought of getting a business degree. One night Bobby and I were in a sports bar and the producer of Fox Sports West's The Big Show approached us and asked me if I would be interested in doing the show. I was amazed. Since I had been in Los Angeles I had been thinking about acting lessons, headshots, agents and such, but I was having too much fun and never got around to doing it. Of course I said, "Yes." The show was on for about a year or so. That experience taught me a lot about appearing on camera. I was noticed on the show and did some modeling for California Extreme sportswear as a result.
Page 3
I had been in Los Angeles for about three and a half years when my grandmother became ill. I moved back east to Chicago to be closer to her. She had always been very supportive of me and I felt that I had to be there for her. Right before I moved to Chicago my good friend Kathy invited me to come with her to a Playboy party -- the Midsummer Night's Dream Party 2000. Of course I said, "Yes." What a night!
The Mansion was amazing; I had to keep pinching myself to see if I was really there or just dreaming. For a girl from Ohio, this was the ultimate dream come true. Little did I know there was much more to come! Kathy and I kept in touch. She knew that sooner or later I would move back to Los Angeles. I made the move in January of 2001. A few short weeks back in town, she and I were invited to Hef's Valentine's Day party. Yes, I got my very own invitation.
This was the party where I met Hef for the first time. He asked me for my name and number and the rest is history. The Mansion is like a fairy tale: every kind of animal imaginable, the finest delicacies, the most attentive staff and the most beautiful women. We even get to see a lot of movies before they hit the big screen. I am so happy to be a part of it. Not to mention the fact that, if you get invited to any of the big parties, you'll see people from 'N SYNC to Rod Stewart. My best friends Gina and Nikki can't wait to come to the Mansion. Maybe they will get noticed and become Playmates too.... But, Hef, make them 2002 -- I don't want to share my spotlight.
Page 4
My shoot for Playboy was amazing; I will never forget it. I had worked behind the scenes in the past. This time I was the attraction. They built sets just for me. They had makeup, they had food, and I felt like a star. But don't let that fool you -- it was a lot of hard work and a lot of long hours. For instance, in the bathtub scene featured in Playboy's August 2001 issue, I was in the tub for about four hours. The water was hot at first, and then it got very cold. The bubbles in the tub were not Mr. Bubble; rather, they were dish soap to keep the bubbles big and fluffy. Yuck. To see unpublished photos and my exclusive pictorial with lots of nude photos and video clips, join the Playboy Cyber Club.
In my spare time I do a wide variety of things, from going to the shooting range, doing karate, yoga and water-skiing to making pottery and spending time with my dogs. As for my love life, it's true that some people are, literally, right underneath your nose. My boyfriend Danny worked across from the apartment in which I lived in 1998; we have mutual friends in common, and coincidentally, we moved into the same apartment building in 2000. He lived below me, and my friend Kathy introduced us. Timing is everything.
As for the Playboy world, I hang around with my good friends Anka Romensky and Playmate Kimberley Stanfield and of course all of Hef's girlfriends. A lot of the Playmates still live out of town. I am sure we will all meet some time or another. Thanks to my Mom and Dad, my sister and brothers, and all my friends for your love and support. My issue has just hit the stands and my journey into the world of Playboy has just begun.
Thanks for stopping by! / 2001년 8월의 여왕
-제니퍼 왈콧 (Jennifer Walcott)
마이 스토리
1 page======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나요, 아니면 절반밖에 없나요? 물론 절반이나 남아 있어요. 제 엄마는 항상 인생의 밝은 면을 바라보라고 가르치셨죠. 모든 것은 가능하답니다. 나는 지금 이 시대의 가장 혁신적이고 명성있는 잡지인 '플레이보이'지의 '2001년 8월의 여왕'이 되어 가운데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4남매 중 둘째인 저는 오하이오주 영스타운(Youngstown)에서 자랐습니다. (언니와 남동생 두 명이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저와 언니를 쌍둥이로 생각했어요. 저는 언니가 하는 모든 일을 해야만 했고, 언니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답니다. 우리는 심지어 옷도 비슷하게 입었어요. 내가 3살 때 언니의 발레 신발 한 켤레를 신어봤는데 그만 그 신발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나는 발레를 공부했고, 고전음악을 들었으며, 바이올린을 공부했답니다. 그리고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주연 발레리나처럼 사진도 찍었지요.
나는 또한 시(詩)에 매료되었답니다. 내가 쓴 시 한편은 교내 시(詩) 경시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는데, 이 시는 영스타운시가 주최한 대회와 오하이오주의 '리더스 다이제스트 젊은 시인 대회'에서도 연이어 1등을 차지했습니다.
사춘기 시절에 우리집에는 많은 아이들과 동물로 붐볐답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내가 집으로 데려온 것이었죠.) 한때는 두 마리의 새와 고양이, 여덟 마리의 개, 토끼 한 마리, 셀 수 없는 게르빌루스 쥐, 그리고 물고기로 가득 찬 수족관도 있었습니다. 나는 항상 길 잃은 동물을 구해 주려고 했지요. 심지어 지금도 엄마와 나는 독일산 개 다섯 마리를 함께 기르고 있어요. (물론 그들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지요.) 나는 채식주의자가 될까도 생각했고, 몇 군데의 동물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답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걸스카우트 '유년단원'이었는데, 우리 걸스카우트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양로원에서 축제일을 즐겁게 하는 봉사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고, 과자를 가져오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2년 동안 지역병원에서 보조 간호사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게 소중하답니다. 어린이와 개, 고양이 그리고 노인에게는 작은 친절이었겠지만 제게는 무척 큰 보람을 안겨주었으니까요.
2쪽======
항상 활동적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치어 리더를 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농구게임에서 치어 리더를 하는 것이 좋았어요. 1995년 로웰빌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미스 틴' 축제행렬에 몇 차례 참가했습니다. 열 살 때는 지역 쇼핑몰에서 교복 패션쇼 모델을 한 적도 있습니다. 패션쇼에서 워킹모델을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지만 키가 작았어요. 남자친구 바비가 대학을 마치고 LA로 이사했을 때 나는 1년 동안 휴학했어요. 남자친구를 방문했을 때 나는 LA가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나는 오하이오 집으로 돌아와서 짐을 꾸려 LA로 차를 몰았지요. 그 결심이 꿈을 이루게 하는 길로 나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고달픈 생활이었어요. 나는 칵테일바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거나 양품점에서 일했답니다. 바비가 영화나 광고 세트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나는 분장과 관련한 서너개의 과정을 배웠고, 학위를 획득할 요량으로 산타 모니카 대학에 등록했습니다. 어느 날 밤, 나와 바비가 스포츠 바에 있는데 '폭스 스포츠 웨스트(Fox Sports West)'의 '빅쇼' 프로듀서가 나에게 다가와 쇼를 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랐지요. LA에 있는 동안 연기학습이나 제출용 얼굴사진 촬영, 에이전트 같은 것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걸 할 짬을 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나는 '예스'라고 답했지요. 빅쇼는 약 1년 동안 진행되었어요.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카메라에 찍히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어요. 나는 그 쇼에서 떴고, '켈리포니아 익스트림' 스포츠웨어 모델을 하게 되었답니다.
3page======
나는 LA에서 약 3년 반 정도 생활했을 때 할머니가 편찮으시게 됐어요. 나는 할머니를 가까이서 돌보기 위해 시카고로 이사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나를 지지해 주었고, 나는 할머니를 위해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어요. 내가 시카고로 이사하기 바로 전에, 친한 친구 케시가 '플레이보이'에서 주최한 '2000년 한 여름밤의 꿈의 파티'에 같이 가자고 초대했습니다. 물론 나는 "예스"라고 답했지요. 얼마나 근사한 밤이었다구요!
맨션은 환상적이었습니다. 나는 현실인지, 단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계속 나를 꼬집어봐야 했어요. 오하이오 출신의 소녀에게 이 파티는 정말로 꿈이 실현된 것이었어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답니다. 케시와 나는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어요. 그녀는 곧 내가 LA로 돌아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나는 2001년 1월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아서 그녀와 나는 헤프가 주최하는 발렌타인데이 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초대장을 받았지요.
이곳이 내가 헤프를 처음 만난 파티였어요. 그는 나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었고 그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답니다. 맨션은 동화처럼 근사했답니다. 온갖 동물과 산해진미,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 게다가 우리는 영화관에서 아직 상영되지 않은 많은 히트 영화를 미리 관람했습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어요. 물론, 당신도 큰 파티에 초대받았다면 N SYNC부터 로드 스튜워트 같은 사람들까지 볼 수 있었겠지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지나와 니키는 그 맨션에 가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아마 그들도 주목을 받고, '친구(Playmate)'가 될 수 있을테죠. 그러나 헤프는 그들을 2002년에 초대할 것입니다. 나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를 그들과 나누고 싶지는 않거든요.
4page======
'플레이보이' 사진촬영은 무척 놀라웠답니다. 나는 이 촬영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이전에 나는 무대 뒤에서 일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내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요. 그들은 오직 나를 위한 세트를 설치하고, 나를 위한 분장을 하고, 나를 위한 음식을 만들어요. 그래서 나는 스타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멍청하게 굴어서는 안돼요. 그건 정말 힘든 일이고, 많은 시간을 견디어내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플레이보이' 2001년 8월호 욕조 장면의 경우, 나는 욕조 안에서 약 4시간이나 있어야 했습니다. 물은 처음에는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무척 차가워졌답니다. 욕조의 거품은 미용 비누거품(Mr. Bubble)이 아니었죠. 거품이 크고 폭신폭신한 상태를 유지시키기 위해 설겆이용 세제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어머! 나의 미출간 사진과 많은 누드사진과 비디오 클립이 포함된 나의 독점 화보집을 보려면 '플레이보이 사이버 클럽'에 가입해야 합니다.
한가한 시간에는 사격장에 가거나, 가라데 연습, 요가와 수상스키부터 도자기 만들기, 개와 놀아주기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하며 보낸답니다. 나의 애정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의 코 바로 밑처럼 가까운 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 그대로예요. 나의 남자 친구 댄니는 내가 1998년 살던 아파트 건너편에서 일했어요. 우리 둘은 한 명의 친구를 서로 알고 있었는데, 우연의 일치로 2000년에 완공된 같은 아파트에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래층에 살았고, 내 친구 캐시가 우리 둘을 소개시켜 주었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지요.
'플레이보이' 세계에 대해 언급해 보면, 나는 좋은 친구인 앤카 로멘스키와 '플레이메이트' 킴벨리 스탄필드, 그리고 물론 헤프의 모든 여자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많은 '플레이메이트'들이 여전히 도심 밖에서 살고 있죠. 나는 우리 모두가 조만간 만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어요. 나의 엄마와 아빠,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나의 모든 친구에게 그들의 사랑과 관심에 대해 감사 드려요. 내가 실린 책이 갓 발매됐고, '플레이보이' 세계로 나의 여행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습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urvivor
Grit and wit made jerri a star of the outback
Page 1
The Australian outback show might have been a snooze-inducing lovefest without Jerri Manthey. Being dubbed "the widely reviled she-devil in a blue bikini" and "an icy dominatrix whose name became synonymous with the word bitch" didn't bother this 30-year-old survivor. "The word bitch is looked on as a negative title," she says. "It would be nice if we came up with a better word for an aggressive, proactive, independent woman. If I were a man on that show, I'd be a hero." Jerri caught heat on Survivor: The Australian Outback for accusing Kel Gleason of chewing on contraband beef jerky and for haranguing gourmet chef Keith Famie for botching the rice. "Keith came rushing up to me recently and gave me a big hug and told me that he's coming out with a second cookbook, called Yes, I Can Cook Rice -- and he is dedicating it to me," she says. "Survivor is really about surviving social situations and judgments from people who don't know you. I felt very lonely during the course of the game because I didn't really have anyone I could relate to. I'm not the kind of person who sits around and waits for someone else to take charge."Page 2
Jerri was an Army brat born in Germany, where her father was stationed. She "played every sport imaginable" and started her high school's theater club. The nomadic survivor lived in Alabama, Oklahoma, Arkansas and Florida before launching her professional acting career and moving to Los Angeles. Jerri, who started acting when she was nine, drew upon her ten years' experience as a bartender in a successful play she wrote called Beautiful Chaos. The recognition following Survivor allowed her to hang up her bar towel for good. "I still have the blue bikini I wore on the show, but it's torn up and not wearable anymore," she says. "It's in a drawer and officially retired." She took a role as a gold digger chasing a wealthy old man in the Los Angeles play Lady Macbeth Gets a Divorce, appeared as herself on the soap The Young and the Restless and got to see her episode of Blind Date re-air. Happily single, Jerri is looking for her equal. "Any man who is afraid of what he saw on Survivor is not a man I want to be with," she says. "I'm ahead of the game because guys already know what I look like when I wake up in the morning."
When she's not auditioning for new roles, Jerri finds inner peace communing with nature. "I'm very earthy," she says. "I posed for Playboy to show my strength as a woman and to take a stand. People are threatened by women who have power. It's time to stop feeling threatened by it and learn to strive to be that way." / ‘생존자'
"든든한 배짱과 재치, 제리를 오지의 인기스타로 만들다"
1 페이지======
'생존게임,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는 제리 먼시가 없었다면 아주 졸리고 따분한 '사랑놀음'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을 하는 파란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로, "화냥년과 다를 바 없는 냉혹한 도미나트릭스(새디매조키즘의 가해 역할)"로 불리지만 서른 살의 최후의 생존자는 도무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물론 화냥년(bitch)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호칭이지요. 나같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독립심이 강한 여성을 위해 좀더 좋은 말을 만들어 냈다면 좋았을텐데. 그 쇼에서 제가 만약 남자였다면 영웅이 됐겠죠." 라고 그녀는 말한다.
제리는 '생존게임,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서 수입 금지된 저장용 쇠고기를 씹어 먹는 켈 글레슨에게 갖은 욕설을 퍼붓고, 밥을 제대로 짓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식가 주방장 케이쓰 페이미에게 비난을 퍼부어서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 케이쓰가 제게 막 달려와서 와락 껴안고는 '그래, 난 밥을 지을 수 있어'라는 두 번째 요리책을 곧 출판할거라고 말했어요. 그 책을 저에게 헌정하겠다더군요."라고 제리가 말한다. "생존게임은 사회적 정서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서 살아남는 프로에요. 제가 사귈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게임이 진행될 때는 외로움을 느꼈죠. 하지만 제가 그냥 멍하니 앉아서 보호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부류의 사람은 아닙니다."
2 페이지======
제리는 아버지가 주둔했던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선머슴처럼 자랐다. 그녀는 "가능한 모든 스포츠"를 즐겼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연극 클럽활동을 시작했다. 제리는 전문적인 연극배우를 시작하여 로스엔젤레스로 이사하기 전까지 알라배머, 오클라호머, 알칸사스, 플로리다 등을 떠돌며 살았다. 아홉 살에 연기를 시작한 그녀는 자신이 쓴 성공적인 연극 '아름다운 혼돈'에서 바텐더로서 10년간 경험을 쌓았다. '생존게임' 이후 많은 이들이 그녀를 알아보게 되어 드디어 바텐더의 일을 영원히 그만둘 수 있었다. "게임에서 입었던 파란색 비키니를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다 찢어져서 더 이상 입을 수도 없죠. 옷장 속에 두고 공식적으로 은퇴시켰죠."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LA의 연극 '맥베드 부인 이혼하다'에서 부유한 노인을 쫒아다니면서 감언으로 남의 돈을 뜯어내는 역할을 맡았으며, 아침 드라마 '젊은 사람, 들뜬 사람'에 출연했으며, '블라인드 데이트(미팅) 쇼'의 재방송에서 그녀의 '생존게임 숨은 이야기'를 봐야 했다. 행복한 솔로, 제리는 동반자를 찾고 있다. "생존게임에서 본 것 때문에 절 두려워하는 남자는 사양합니다. 그런 남자들은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 제 취향이 아니죠. 남자들은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훨씬 더 유리하죠."
새로운 배역을 위한 오디션을 받지 않아 한가할 때, 제리는 자연과 교감하면서 내면의 평화를 발견한다. "저는 무척 솔직해요. 여자로서 저의 힘을 보여주고, 제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 '플레이보이'에 포즈를 취했어요. 사람들은 강한 여자에게 두려움을 느끼나봐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두려운 감정은 버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적극적이고 강해지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죠."